[그땐 그랬지: 옛날특집②보] 공중전화 기다리며 "'삐삐' 치던 그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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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그랬지: 옛날특집②보] 공중전화 기다리며 "'삐삐' 치던 그시절"
호출 오면, 동전 들고 공중전화로 달려갔던 그추억.
  • 김민호 기자
  • 승인 2020.10.18 12: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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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가 울리면,
동전을 잔뜩 준비해 공중전화에 줄을 섰고
집 전화기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했다.
그땐 그랬지...

[공공투데이 서울=김민호 기자] 허리에 걸거나 청바지 오른편 뒷주머니에 '삐삐'를 살짝 꽂고 거닐다 '누가 호출오면' 하는일을 멈추고 곧장 공중전화로 달려가 음성 메시지를 확인하던 그때 그시절을 추억소환 했다.

저녁 밥상머리 앞에서 아빠가 허리에 '삐삐' 차고 다녔던 중·고등학교 시절의 아날로그 감성을 가끔은 딸내미에게 들려주곤 한다. 그만큼 디지털시대에 쫒기고 있는 요즘 현대인들에게는 느슨했던 아날로그 시대로 돌아가고픈 "옛날이 그리웠다"는 얘기다.

삐삐란 발신자의 전화번호로 디지털 메시지를 수신하는 휴대용 호출기를 말한다. 삐삐는 지금처럼 휴대전화가 보급되기 전, 1990년대 널리 사용됐다. 특히 1997년 삐삐 가입자는 무려 1천500만명.

통신사는 수백만원에 호가하는 비싼 핸드폰 대신, 직장인들의 비지니스를 위해 저가용 호출기를 출시했지만 그 예측은 빗나갔다. 오히려 연인과의 데이트를 위해 가장 많이 사용됐고 그다음 가족과 친구 순이였다. 오로지 삐삐가 일상 소통수단으로 이용됐다.

상대방이 보낸 음성 녹음 메시지를 듣기 위해 공중전화 부스 앞에 삐삐 들고 길게 줄을 서 있는 모습도 흔한 진풍경이었다. '삐!삐!삐!-' 호출 소리가 들리면서 가느다란 삐삐 액정에 찍힌 발신번호와 함께 남겨진 짧은 암호(숫자)를 보고 누가 어떤 의도로 이런 숫자를 보냈는지 해독하는데 몇초간 머리를 굴려야 했다. 또 암호를 풀어 맞췄을때 '알았다' 라는 통쾌하고 짜릿한 아날로그 감성의 맛이 있었던 추억의 그시절 이었다.

1990년 중후반에 상대방이 보낸 음성 녹음이 저장된 삐삐를 확인하기 위해 모두가 공중전화 부스로 몰렸다.
1990년 중후반에 상대방이 보낸 음성 녹음이 저장된 삐삐를 확인하기 위해 모두가 공중전화 부스로 몰렸다.

남녀 연인까리 사랑과 우정을 나눴던 짤막한 숫자는 1212(홀짝홀짝: 술마시자), 7700(뛰뛰빵빵: 드라이브 가자), 108(백팔번뇌: 고민이 있어), 7942(친구사이: 우리는 친구), 1717(일찍일찍: 일찍와), 0404(영사영사: 영원히 사랑해), 101035(열렬삼오: 열렬히 사모해), 3575(사무치로: 사무치게 그립다), 1000024(만이사: 많이 사랑해), 2626(이륙이륙: 약속장소로 간다) 등이다. 이른바 '암호 숫자'를 탄생 시키며 새로운 삐삐 커뮤니케이션 언어를 만들어 냈다.

또 가족이나 직장 상사에 호출 됐던 숫자는 045(빵사와), 07209(땡칠이 영구), 0909(빵구빵구: 모든것이 취소됐다), 0929(공굴리구: 볼링장 가자), 100(백: 돌아와), 11555(이리로오오), 1472(일사천리: 일이 잘되고 있다) 등이 주로 사용됐다.

어쩌면 조금 낯설고 유치하지만 숫자로만 마음을 전할수 있는 제한된 상황에서 상대방과 정감을 듬뿍 담아 주고받던 암호 탄생은 사랑과 우정을 챙기고, 가족애도 돈독히 하는 편리하고 좋은 수단이였다.

1990년대 젊은 직원들은 회사에서 지급해준 호출기 외, 자기 돈으로 하나 더 장만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회사에서 준 것을 “사람을 옭아매는 동아줄”이라고 하면서 이른바 “지옥 삐삐”로 부르기도 했다. 반면 자신이 사서 애인, 친구, 가족과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은 “노는 삐삐”라고 불렀다. 세월이 지나고 세대가 변해도 직장인들의 마음과 감정은 왜 그대로인지 지금 생각해 보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경향신문 1996년 10월 22일의 ‘통계로 보는 세상’ 기사를 들춰보면 ‘직장인들은 삐삐가 직장 생활에서 필요한 물건이며 호출되었을 때 기분 좋은 상대는 애인 56%, 친구 24%, 가족 18% 순으로 나타났다.

비즈니스를 위해 탄생했다고 하지만 삐삐는 수많은 젊은 연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새로운 숫자 언어들을 폭발적으로 만들어냈다. 그 시절 연인들 사이 가장 오글거리는 '삐삐 언어'는 3505(사무치게 그립다), 5091(오늘 밤 전화하세요), 5854(오빠 사랑해), 2848(이제 그만 만나요), 7486(죽도록 사랑해), 6516(보고 싶다, 연락 바란다), 2848(이제 그만 만나요), 98258(굿바이 오빠)등이었다.

호출이 울리면, 상대방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동전을 잔뜩 준비해 공중전화에 줄을 섰고 집 전화기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했던 '그때 그 시절'. 이때는 호주머니에 동전을 두둑히 넣고 다니던 시절이었는데, 디지털시대로 거치면서 '사이버 머니'로 인한 동전은 역사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씁쓸하다.

삐삐는 이동통신사들에게 밀려나면서 점점 몰락해 갔다. 삐삐 전성기에 앞서 1983년에 들어 013(SK텔레콤), 015(서울이동통신, 나래이동통신), 015-77(해피텔레콤)의 번호 체계가 일찍이 상용화 됐다. 지금 보면 다들 촌스러우면서도 웃기는 숫자였다.

1988년 400만원짜리의 고가 핸드폰이 첫 등장했다. 워키토기 무전기 보다 커서 전화기가 얼굴 절반을 가렸고 안테나는 머리 정수리 위보다 높았다. 요즘말로 '대왕폰' 이었다. 이와 함께 그랜저, 캐딜락 등 넒은 국산차에는 카폰도 함께 등장했다.

이때 가격이 이정도 였으니까 지금은 엄청나게 비쌌다는 말로 대부분 '사장님 폰'으로 사용하는데 그쳤다. 일반 직장인과 서민은 염두도 못냈다. 그러자 1년 뒤인 1989년에 17만원에서 20만원 하던 저가의 삐삐가 출시 됐고 1990년대 후반에 들어와 1-5만원까지 가격이 '뚝' 떨어지면서 10대 청소년들도 전성기를 누렸다.

1990년 후반에 와서 첫 폴더형 스타택(모토로라)은 직장인들에게는 자존심이었다. 얆고 까만 몸체에 손안에 쥐어진 앙증 맞게 생긴 '미제 폰'으로 사랑을 독찾이 했다. 이 해 한국에서는 애니콜, 시티폰 등 100만원 이하의 핸드폰이 점점 보급화 되면서 삐삐 사용자가 급격히 떨어졌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삐삐와 함께 거리의 공중전화도 사라져 갔다.

지난 2015년 1월까지만 해도 일부 애착을 가진 마니아와 병원 관계자들에게 3만 1522명 정도가 사용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스마트폰 대중화로 발자취를 완전히 감췄다. 그땐 그랬다.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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