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랬지: 옛날특집③보] '귀했던' 동네 영화관 '그시절 흑백 텔레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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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그랬지: 옛날특집③보] '귀했던' 동네 영화관 '그시절 흑백 텔레비전'
동네 할머니들 모여, 흑백으로 '전원일기' 보던 그시절.
  • 김민호 기자
  • 승인 2020.10.25 10: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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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콘이 없어 채널을 너무 자주돌려,
채널 손잡이가 자주 빠졌던 '흑백 텔레비전' 보던 그시절.
그땐 그랬지...

[공공투데이 서울=김민호 기자] 할머니가 가마솥에 고소하게 만든 누룽지를 함께 뜯어 먹으면서 흑백 텔레비전 앞에서 '전원일기'를 시청했던 옛 추억을 소환한다. 1980년 10월 21일부터 2002년 12월 29일까지 MBC에서 방영된 텔레비전 드라마다. 우리나라 TV 드라마 역사상 1088회를 방영한 역대 최장수 프로그램으로 모두가 기억하고 있다.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면 초창기에는 흑백으로 방송되다가 1980년 12월 22일, 컬러 TV 방송이 시작되면서 '컬러 방송'으로 바뀌다 보니, 더욱 신기하고 생동감 있던 추억이 될수 밖에 없었다.

추억속에 사라진 전원일기를 보던 옛날 흑백 텔레비전이 바로 1955년 냉장고, 텔레비전 제조 회사인 대한전선이 만들던 시절의 '디제로 텔레비전'이다. TV 몸체에 다리가 네개 달리고 브라운관을 양쪽문 '드르륵' 거리며 덮었던 시절. 특히 리모콘이 없어 TV 수상기 앞에 다가가서 채널 손잡이를 잡고 좌우로 돌렸던 요녀석은 '고장 없고 결점 없는 '무결점 흑백 TV'로 항간을 떠들썩 하게 만들었다.

특히 동네마다 1-2곳만 보급된 귀했던 다리 달린 TV는 '동네 영화관' 노릇을 톡톡히 했다. 할머니, 아주머니, 동네 꼬마들까지 너나할것 없이 한자리에 수십명이 모여 전원일기를 시청했다. 어떤 동네는 시청료로 500원-1000원씩 받아 간식거리도 사먹곤 했다. 드라마를 보면서 어떤 할머니는 고추를 다듬고, 마늘과 고구마 순의 껍질을 벗기면서 옛날 흑백 드라마를 보던 '그 시절만의 맛'이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 땅에서 우리 제조사 상표를 달고, 텔레비전을 처음 생산한 시기는 정확히 1966년 7월 9일이다. 진공관 12개와 발광다이오드 5개로 만들어진 흑백 텔레비전으로, 1초에 30번씩 화면이 바뀌는 NTCS(Nation Television Systems Committee) 기술이 적용됐고, 손으로 돌리면서 채널을 조정할 수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금성 흑백 텔레비전 ‘VD191’모델이다.

그때는 국회의원들이 전부 월급의 절반으로 텔레비전을 사려고 했거나, 도시근로자들이 죄다 6개월치 월급을 한 번에 쓰려 했는지는 정확히 확인 되지 않고 있으나, 당시 대한방송문화협회에서 구입 신청을 받았는데, 대기자가 너무 많아 추첨으로 판매해야 할 지경이었다고 한다. 그 텔레비전은 ‘진공관식 19인치 1호’ 제품이란 뜻을 담아 ‘VD-191’이란 모델명이 붙여졌다. 크기는 너비 64Cm, 길이 31Cm, 높이 64Cm, 무게는 22Kg이었다. 시판 가격은 6만 원을 조금 넘었는데, 당시 국회의원 월급이 14만 원 정도였고, 도시근로자 한 가구당 월급이 1만 원 정도였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금성 흑백 텔레비전 ‘VD191’

금성사는 우리나라 최초 텔레비전 이후 60년대에 8종, 70년대에 들어서 100여종이 넘는 텔레비전을 출시해 위세를 떨쳤다. 두번째로 동남전기에서 1974년 우리나라 최초 리모콘 텔레비전을 출시했다. 옛날 종로 보신각에 텔레비전을 갖다 놓았던 회사와 합작한 한국마벨도 텔레비전을 본격 생산했다. 삼성전자는 일본 산요사와 합작해 1970년 처음 텔레비전을 생산했다. 참고로 대한전선은 일본 도시바사와의 기술제휴로 1973년 무결점 '디제로 TV'를 생산했다.

하지만 앞서 1956년 우리나라 첫 텔레비전 방송국을 개국했으나 아직 텔레비전도 만들지 못하던 나라에서 장사가 제대로 될리가 없었다. 정부는 갑자기 수입 텔레비전에 관세 폭탄을 던져서 대당 가격을 37만원 수준으로 만들었다. 알게 모르게 들어오는 미국 PX 출신의 텔레비전 들이 국내 수요을 감당하며 1958년 텔레비전 보급대수는 약 7천대 정도였다.

'브라운관 양쪽문을 열수 있고 네개의 다리가 달린' 1, 2세대에서나 볼수 있었던 한때 추억의 '옛날 흑백 텔레비전'은 요즘 세대애는 '돌리는 채널'의 존재도 모른다.  특히 공중파 하면 KBS, MBC, TBC 였던 시절도 처음 들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자고로 올림픽은 텔레비전으로 봐야 제맛이다
예나 지금이나 자고로 올림픽은 텔레비전으로 봐야 제맛이다

오일쇼크 등으로 격동의 시기였던 1974년, 아남산업이 일본 마스시타사와 합작해 한국내셔날을 설립해 이해 1월 'CT-201'을 생한 했는데 당시 가격은 14인치 32만원, 20인치가 42만원 수준이었다. 이 가격은 앞서 1950년 대 가격과 그리 큰 변동이 없는 가격에 판매됐다. 어찌보면 '옛날 가격'이나 '현재 가격'이나 TV 가격은 별반 차이가 없었던 같다.

이후 1975년 우리나라는 컬러 텔레비전을 첫 생산해 미국 등 해외로 수출되며 1977년 12만 대, 1978년 50만 대가량의 수출 실적을 기록했다. 그리고 마침내 1980년 8월 컬러 텔레비전이 국내 첫 시판과 함께 1981년 1월 1일 역사적인 컬러방송이 송출됐다. 이는 1966년 첫 국내 텔레비전을 생산한지 약 15년 만의 일이었다.

거꾸로 추억을 고스란히 담았던 '흑백 텔레비전'도 함께 사라져 갔다. 전원일기도 흑백에서 컬러로 바뀌는 이 과도기를 거친 첫 드라마가 된 셈이다.

당시 가장 추억에 남았던 점은, 리모콘이 없어서 '채널을 너무 자주돌려' 채널 손잡이가 자주 빠지곤 했던 그때 그시절. 또 화면이 너무 작아서 가까이보기 위해서 가까이 갔다가 눈이 나빠지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대국민 눈 건강 캠페인까지 했던 기억도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은 불편했던 그때가 그립기도 하다.

지금 박물관에서나 볼수 있는 역사속 뒤로 숨어버린 그 시절 흑백 텔레비전. 지금도 어쩌다 박물관이나 서울 청개시장 그 어딘가에 숨어 있던 흑백 텔레비전을 발견하면, 그때의 추억을 간직하고 할머니와 누룽지를 뜯으며 전원일기를 보았던 그시절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이 해에 손으로 직접 돌리며 영화를 틀어주던 낡은 영사기를 보면, 아날로그 감성이 있었던 추억도 함께 생각난다. 그땐 그랬다.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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