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랬지: 옛날특집⑧보] 겨울이 오면 '시골 할머니표 군고구마'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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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그랬지: 옛날특집⑧보] 겨울이 오면 '시골 할머니표 군고구마' 생각이···
아빠 퇴근보다 군밤을 더 기다렸던 그때의 추억
  • 김민호 기자
  • 승인 2020.12.13 1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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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같이 펑펑 눈이 오는 추운 겨울이면,
        시골 할머니가 아궁이 숯불에 구워줬던
         옛날 군고구마와 군밤이 더욱 생각난다.
              그땐 그랬지....

[공공투데이 서울=김민호 기자] 13일 공공투데이(서울중앙본부) 사무실에 출근해 '그땐 그랬지' '옛날특집'을 작성하고 있는데, 서울에는 새벽부터 눈이 계속해서 펑펑 내리고 있다. 이른 아침부터 자동차 위에 하얗게 수북히 쌓인 눈을 대충 치우고 회사로 출근했다.

이날처럼 눈이 내린 겨울에는 무엇보다 '군밤과 군고구마'가 가장 생각난다. 그래서 이날은 시골에서 할머니가 숯불 아궁이에 구워줬던 구수한 겨울철 군밤, 군고구마의 옛 추억을 소환했다.

겨울방학이 되면 시골 할머니댁에 가서 마당 한곳에 커다란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피고 가마솥에 밥을 짓고 타고 남은 숯불로 군고구마와 군밤을 구워줬다.

그냥 '호호' 불어먹어도 맛있는데 할머니표 김치나 동치미 국물에 곁들여 같이 먹으면 그야말로 표현할수 없는 '시골 맛'이다. 주둥이에 까맣게 묻혀가며 군고구마와 군밤의 껍질을 까고 '호호' 식혀 먹었던 그시절이 자꾸 떠오른다.

할머니는 "얘야 체할라, 천천히 먹으렴" 옆에서 흐믓하게 웃으며 먹는 모습을 보며 마냥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표정이다. 당시 시골이라는 고향과 부모님 댁의 그리운 추억이 있었다면 누구나 한번쯤 아련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시골에서 긴긴 하루밤을 밤새우며 행복했던 추억이 눈이 오는 이날 같은 겨울철이면 할머니 생각이 더욱 난다.

추운 겨울철 누구나 '군밤, 군고구마 추억' 하나쯤은 있다. 시골이 없어 시골 맛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길거리에 연탄을 피우고 석쇠위에 올려진 노오랗게 익어 가는 군밤, 손수레 위에 드럼통을 개조해 장작을 피우고 그 위에 군고구마를 굽는 아저씨의 모습이 도시에서도 보였는데, 어느날부터 보이지 않는다.

서울시가 2003년 1월부터 "거리와 도심에 미관을 찌푸린다"는 불법 노점상을 전면 단속해서 부터다. 한때 불꽃튀는 경쟁이었던 붕어빵 장사도 덩달아 없어졌다.

추운 겨울날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나와 버스를 기다리다 먹었던 군밤이 자꾸 생각난다. 특히 겨울철 라이벌 간식이 '오뎅이나 붕어빵'이었다. 매년 시골 산골에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가을 알밤을 줍거나, 황토밭에 가장 튼실한 고구마를 심고 수확, 창고에 저장해 두었다가 손자,손녀의 겨울방학이 되기만을 기다린다.

때마침 손녀, 손자들의 겨울방학이 되서 시골 할머니댁에 놀러가면 도시에서는 볼수 없었던 가마솥 아궁이에 장작불이 타고 남은 숯불에 직접 구워주셨던 그때 그시절.

군밤과 군고구마가 구워지는 동안 할머니와 손주가 따뜻한 아궁이 앞에 앉아 불을 쬐며 '도란도란' 정감있는 얘기를 나누면서 사랑과 정을 키웠었다.

오죽하면 당시 '군밤타령'이 흥행 했을까? 군밤타령은 신민요로 경쾌하고 신나는 노래여서 가사를 바꿔 노래 게임에도 활용할수 있을만큼 대중적 민요로 자리 잡았다. 예컨대 ‘나는 총각 너는 처녀 처녀 총각이 어허어 얼싸 잘 놀아난다 얼싸 좋네 - 아 좋네 군밤이요 에혜라 생률 밤이로구나’ 하면서 주거니 받거니 흥에 겨운 추억들이 한번쯤 있다.

처음 총각 처녀 대신에 여러 가지 상대되는 단어들을 집어넣으면 재미있는 내용의 게임 노래가 만들어 졌다. 한 때 기타를 메고 노래부르기 운동을 펼치던 전석환 씨가 그렇게 불러서 널리 보급됐다. 어쩌면 원곡의 군밤타령보다 재밌게 개사해 즐겼던 군밤타령을 더 많이 알고 있을지 모른다

요즘 노점상 단속이 심해져서 '군밤, 군고구마 아저씨'를 보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물론 먹거리도 그만큼 많아졌고, 추운 날씨에 밖에서 '오들오들' 떨면서 팔고 있는 수고에 비해 매출도 적다. 대신 길거리 분식점에서 파는 추운겨울 오뎅이나 떡볶이, 튀김에 밀려 결국 도태 됐다.

옛날 이맘때쯤 고구마 장사 중에는 어린 고등학생들도 참 많았다. 그만큼 학비를 벌기 위해 알바 장사로 제격이었다. 수능이 끝나면 고물상에서 드럼통을 구해 거리에서 군고구마 장사를 하는 예쁘고 착한 남녀 고3 학생들이 많았다.. 그래서 길거리에 지나가다 이들이 기특해서 그냥 맨손으로 지나가질 못했다.

지금은 단속도 단속이지만 본인들이 창피하기도 하고 돈도 안되니까 자연스럽게 접게 됐다. 더욱이 편의점, 햄버거, 피자 등 매장의 급격한 '학생 알바 고용'은 이를 더욱 후퇴하게 만들었다.

눈이 하늘에서 하얗게 내리는 겨울 이맘때면 군밤이나 군고구마 한봉지를 손에 들고 퇴근길에서 사들고 왔던 그때 그시절 아빠가 생각난다. 지금 옆에 계실지도, 안계실지도 모르지만 사실 아빠 보다는 군밤, 군고구마를 더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그땐 지금보다 살림이 넉넉하지 못했었고 먹을것도 궁핍하던 시절이었다. 쉽게 시골 밭이나 산에서 구할수 있던 군고구마와 군밤이 '내생애 최고의 간식'이였던 것 같다.

문득 캠피장에서, 야시장에서, 우연히 여행중에 숯불위에 올려진 군밤이나 군고구마를 볼때, 옛날 어린 시절의 할머니, 아버지가 생각난다. 그땐 그랬다.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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